#336(01/30/21) “가라”

chaplain

  1 13 육군 예비군(US Army Reserve) 채플린(Chaplain, 군목) 임명식을 했습니다. 임명식을 갖기 까지 여러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부대에서 신체검사 , 영어시험, 영어 설교 비디오, 인터뷰 2 그리고 여러 문서 준비 등을 거친 결과였습니다. 사실 나이 때문에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채플린 채용관으로부터 날아 이메일 통에 나이도 면제 받을 있다는 내용을 보고 지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메일은 나에게만 것은 아니었던 같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는 같아서 반응을 했었던 것이지요. 이러한 단순한 저의 반응을 하나님께서 사용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사실 미국이라는 나라는 33천명 정도의 인구와 땅을 소유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여러 인종과 종교가 함께 살아가다 보니 멀리 나가지 않아도 내가 사는 곳이 선교지라는 생각이 정도입니다. 그리고 미국 안에서 군대는 다른 특수 사역지요, 선교지라고 생각합니다. 일반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는 적을 생각하고, 국가의 안전을 위해 목숨을 놓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집단입니다. 그리고 자주 근무지를 이동하면서 살다 보니 그런 가운데 파생되는 결혼 문제, 부부문제, 부모와 자녀 문제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전쟁터에 다녀 사람들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심한 고통을 겪기도 합니다. 그러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복음을 전하러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주님께서 가라 여러 번의 마음의 부담을 겪었습니다. 한인들이 많이 살지 않고 위험하다는 국경도시의 목회, 텍사스에서 아무 연고가 없는 버지니아로, 현재는 한인이 많이 살지 않는 매나사스에서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모두 가라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순종이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COVID-19으로 중소교회들이 힘든 상황이고 우리 교회도 예외는 아닌데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목회를 위해 다시 가라 부르심에 순종하고자 합니다. 제가 타성에 젖어 게을러 지지 말라는 부르심 같기도 합니다. 군목회가 처음이라 생소한 것이 많지만 주님께서 열어 주신 데는 이유와 목적이 있다고 확신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도 전혀 생소한 땅으로 가라고 하셨고, 모세를 부르셨을 때도 두려운 바로 앞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성도를 향해서 가서 제자 삼으라 부르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가라는 명령에 순종하여 생소한 땅으로 오직 복음을 위해 걸어간 결과로 세상이 주의 복음을 듣고 있고, 계속 전해지고 있습니다. 내가 가장 익숙한 곳에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복음의 확장을 위해서 누군가는 아무도 가지 않으려는 생소한 곳으로 가야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있는 가정에서부터 시작해서, 생소한 이웃과, 지역사회와 세상의 넓을 땅을 향해 가라고 지금도 하나님은 부르고 계십니다. 오직 가라 부르심에 순종하여 나의 삶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 하나님께 순종하는 그래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도 드립니다

#335(01/23/21) “교회가 할 일”

church

 미국의 목회 현장은 점점 도시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중소도시에서는 교단과 상관없이 목회자가 없는 교회가 적지 않습니다. 재정적으로도 넉넉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젊은 목회자가 선교 마인드가 없다면 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의 미국 목회지였던 텍사스 라레도 지역, 그리고 현재 매나사스 지역도 히스패닉 인구가 많고 상대적으로 한인 인구가 적어서 한인 사역하기가 쉬운 지역이 아닌 같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하시면 지역에 상관없이 부흥을 주실 믿습니다. 사람을 통해 하나님께서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디도서 11-9절까지 보면 사도 바울이 그레데 섬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디도에게 목회 편지입니다. 바울은 믿음직한 사람 디도를 그레데 섬에 보냈습니다. 당시에 그레데 섬은 소문이 좋은 지역이었습니다항상 거짓말을 하고, 악한 짐승이고, 게으른 탐식가라는 소문이 무성했습니다(1:12). 어떤 목회자도 가고 싶지 않은 지역에 디도가 파송을 받았습니다. 바울이 가장 믿고 신뢰했던 디도를 불신의 도시에 보내 교회를 세운 가지 이유를 발견 있습니다.

 첫째는, 교회에서 성경적인 지도자를 세우라는 것이었습니다.

  교회 직분을 주면 사람이 그에 맞는 사람이 된다고 하는 분이 있는가 하면, 섬기는 사람 중에서 리더를 세워야 된다는 분도 있습니다. 전자의 경우가 전혀 없다고는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후자가 성경적이고 그렇게 교회 리더가 세워져야 된다고 봅니다. 이것이 교회 현실 속에서 쉽지 않은 부분이지만 이것이 성경적인 원리입니다. 그래서 7절에 보면 소위 감독이라 불리는 교회 지도자는 가정적으로 책망할 것이 없고, 자녀 양육을 잘하는 사람이어야 하며,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자아, 감정, 물질관이 성령님의 역사하심 가운데 변화된 사람이어야 합니다. 적극적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 교회 지도자가 되어야 함을 말합니다. 디도는 그런 사람이었고, 그와 같은 사람이 계속 세워지게 하는 것이 그가 교회에 파송된 이유였습니다.

둘째는, 교회에서 성경적인 가르침을 타협없이 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디도가 사역하는 교회에서도 어떤 거짓 가르침이 전파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른 교훈’, ‘바른 가르침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아마도 율법주의적인 할례파 사람들이 거짓 가르침을 전했던 같습니다(10). 그들은 부정한 이득을 추구하고, 마음과 양심이 더러워 졌고, 입으로 하나님을 인정하지만 삶으로는 부인하고, 가증하고, 불순종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11-15). 그래서 그들과는 추호도 예수그리스도의 복음, , 바른 가르침에 대해 타협하지 것을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바로 엄중한 사역을 위해 디도는 보냄을 받았습니다.

 오늘날 교회에 성경적인 지도자를 세우고, 지도자들을 통해 성경적인 가르침이 타협없이 전해질 하나님의 몸된 교회는 언제나 영적 건강과 생명력을 유지할 있다고 믿습니다

#334(01/16/21)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

rumors

사람 사는 어느 곳이나 말이 많습니다. 옛날 농어촌에서 어떤 소문이 나면 동네 사람만 알고 너머 사람은 모를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터넷이 발달한 요즘은 사람의 말이 무서울 정도로 퍼져 나갑니다. 동네에서 일어난 일이 도시, 나라를 넘어 세계로 퍼질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소문이 때로는 왜곡되고, 비인격적인 댓글로 차고 넘치면 사람의 인생이 처참해 지기도 합니다. 무서운 세상입니다. 똑똑한 사람들이 여러 편리한 것들을 만들어 내고 그것으로 돈을 벌지만 한편으로는 그로 인해 불편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옛날처럼 모든 편리한 것들을 없애고, 인터넷도 없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여전히 좋은 부분도 있기 때문입니다.

전도서 716-22절까지 보면 말에 쉽게 휘둘리고 극단적인 삶을 사는 인생들에게 년을 건너 뛰어서 지혜로운 말씀을 주고 있습니다.

 첫째, 전도서 기자는 지나치게 살지 말라고 합니다(16-17).  지나치게 의인도, 지혜자도 되지 말고, 또한 지나치게 악인도 어리석은 자도 되지 말라고 합니다. 지나치게 의인 또는 지혜자가 되지말라는 것은 선한 삶을 산다고, 안다고 교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는 의인과 지혜는 언제나 교만에 이르기 마련입니다. 그러다가 스스로 꾀에 넘어가고 자고해서 망할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극단으로서 지나치게 악독하게 또는 어리석게 살다가 빨리 죽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지나치게 사는 삶은 극단적인 생각에 빠져서 사는 인생입니다. 성경은 그런 극단적인 삶을 살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극단적 삶을 피하는 방법은, , 교만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삶은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누릴 있다고 전도서 기자는 말합니다.

둘째, 사람 말에 휘둘리지 말라고 합니다(21). 교회처럼 많은 곳이 있을까요? 한편으로 이해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교회는 병원 같아서 여러 환자들이 다양한 증상과 영적인 질병으로 치료받는 곳입니다. 치료가 잘된 사람은 감사의 말이 넘치지만 아직 치료 중인 사람은 고통으로 인해 불평과 불만이 쉬지 않고 영적인 치료와 수술하는 과정이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적인 만지심 가운데 고통스러운 과정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견뎌내면 기쁨과 감사는 아름다운 말과 찬양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과정 가운데서는 저주의 말도 나올 있다는 것이지요. 여기서 전도서 기자는 우리의 솔직한 자아 성찰을 통해 어떤 말에도 휘둘리지 말라고 합니다. 자신도 다른 사람 욕할 때가 솔직히 있지 않냐는 것이지요(22). 어쩌면 나도 영적인 감기가 와서 아플 그럴 있다는 말입니다. 사람이 원래 그렇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어떤 말에도 휘둘리지 않고 사는 방법은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고 그렇게 사람이 가장 지혜로운 사람임을 기억하며 살면 좋겠습니다

#333(01/09/21) “밤 길”

night_drive

오랜만에 경기를 하러 가는 배구부 고등학생들을 태우고 30 거리에 있는 맥클린 고등학교에 가게 되었습니다. COVID-19으로 인해 소독에 신경이 쓰였고, 학생들과 코치는 모두 마스크를 쓰고 탑승을 했습니다. 오후 5 넘어서 목적지에 도착했는데 벌써 날이 어두워 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을 저녁 7 30 경에 픽업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맥클린 고등학교는 처음으로 학교라서 불안한 마음에 미리 답사를 다녀 왔습니다. 학교가 주택가에 자리 하고 있고, 학교 입구로 들어 가는 도로 사인도 작아서 놓치기 쉬운 곳이었습니다. 답사를 갔다가 돌아 때는 엉뚱한 길로 들어서서 당황하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미리 와봤고 실수도 터라 자신 있게 운전할 있었습니다.

학생들 픽업할 장소로 갔습니다. 캄캄한 밤이었습니다. 그런데 눈에 익은 스쿨버스 대가 먼저 있었습니다. 같은 팀에 있는 분이었습니다. 분은 지도만 미리 보고 왔는데 어두워서 그랬는지 지나쳤다고 합니다. 어떻게 가야 할지 걱정하는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가면 좋은지를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안도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저를 만난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미 실수를 했고 돌아갈 때도 캄캄한 밤길이어서 더욱 그랬던 같습니다.

 우리의 인생 길은 환한 길도 어두운 길도 있습니다. 환한 길을 때는 걱정이 별로 안됩니다. 일이 풀리고, 관계도 좋고, 그리고 건강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어두운 길을 때는 누구나 걱정이 되기 마련입니다. 일이 풀리고, 관계도 좋고, 건강도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럴 누군가 옆에서 도와 주는 사람이 있으면 위로 받으며 안도할 있습니다. 마음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 사람만 있어도 축복입니다. 그리고 도와 주는 사람이 어두운 길을 지나쳐온 사람이라면 믿고 의지가 것입니다. 그러한 도우미가 우리 각자가 수도 있고, 그리고 그러한 도우미를 만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너무 감사한 일입니다. 어떤 경험 있는 사람이 그렇게 도움이 된다면, 우리의 최고의 상담자가 되시는 예수님께 나아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은혜를 받을 있습니다. 이유는, 첫째, 예수님은 우리가 가는 인생 여정을 너무나 알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인간을 지으신 창조 사역에 함께 하셨던 삼위일체 하나님이시기에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십니다. 둘째, 예수님은 인간으로서 인생 여정을 걸으신 적이 있었던 분이십니다. 인간관계에서 배신도 당해보시고, 배고픔과 눈물과 모함과 억울한 재판도 당해보시고, 심지어 가장 고통스러운 십자가에서 처형을 당하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가장 불쌍히 여기시고, 경청해서 들어주시며, 가장 위로를 주실 분도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분의 말씀을 따라가는 길이 안전한 길이며, 우리가 어두운 길처럼 앞이 보이고, 답답하고 막연한 상황에 놓일 지라도 안심하고 의지할 있는 분이 계시다면,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믿습니다.

(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332(01/02/21)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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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건한 말씀생활을 도와 주는 매일 성경 누가복음으로 2021년도를 시작했습니다. 사건의 시간 순으로 적고 있는 누가복음은 침례 요한과 예수님의 탄생의 과정을 먼저 적고 있습니다. 그리고 1 46절에 유명한 마리아의 찬양 나옵니다. 번도 남자와 적이 없는 마리아는 하나님의 천사가 와서 아기를 낳을 것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상상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리아는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1:38)

 이처럼 처녀인 자신이 임신한다는 말을 듣고서도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섭리와 말씀에 순종하면서 그녀의 찬양이 1:46절에서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시작됩니다. 여기서 찬양 영어로 ‘glorify’ ‘exalt’ 번역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몸소 체험한 마리아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가장 높여 드리는 아름다운 모습을 있습니다. 사실 놀라운 일은 그녀가 계획하지 않은 , 그녀가 생각하지 않았던 , 그녀가 없었던 , 어쩌면 그녀가 원하지 않았던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임재와 말씀에 온전히 순종했습니다. 그리고 온전한 찬양으로 하나님을 높여 드리는 믿음의 모범을 보여 주었습니다.

 새해가 밝았습니다. 동안에 어떤 일이 나에게 일어날지 누구도 없습니다. 내가 계획하지 않은 , 내가 생각지도 않은 , 내가 없는 , 어쩌면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이 닥칠 있습니다. 마리아의 찬양의 모습을 떠올렸으면 좋겠습니다.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의 임재와 나에게 주시는 말씀에 믿음의 자세를 잃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영혼이 주를 찬양했다는 고백과 간증이 연말에 넘치면 좋겠습니다.

그러한 찬양 가운데 주님의 능력을 맛보는 , 주님의 말씀대로 모든 것이 되리라고 더욱 믿는 , 주님께서 나의 연약함을 돌보심을 느끼는 해가 되시길 기도 드립니다.


특별히 세계를 두려움으로 몰아 넣었던 COVID-19 이상 위협이 되지 않도록 하나님의 도우심을 위해서도 다시 기도드립니다.

#331(12/26/20) “한 해를 돌아보며”

shelter

해를 돌아보면서 가장 많이 쓰는 수식어가 있다면 다사다난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해는 다사다난보다는 대사대난이었던 같습니다. COVID-19이라는 전염성이 강한 바이러스로 인해 세계가 충격에 빠진 해였습니다. 빼곡히 하늘을 날아 다녔던 항공기들은 비행장에 발이 묶였습니다. 왁작 지껄이던 운동장의 아이들은 집에 발이 묶였습니다. 특히 미국은 현재 명의 확진자와 33만명의 사망자로 인해 엄청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음식점들이 많이 문을 닫았습니다. 실업자들이 다시 늘고 있다는 뉴스가 나옵니다. 그리고 많은 교회들이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렇게 암울한 터널 끝에 COVID-19 백신 접종이 시작되었다는 줄기 같은 기쁜 뉴스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백신이 세계에 퍼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병원에서는 백신이 도착했다는 소식에 의사와 간호사들이 함께 춤을 추기도 합니다. 악성 바이러스의 기세가 꺾일 날도 머지 않은 같습니다.

 이렇게 바이러스로 인해 모든 것이 멈춘 했지만 두꺼운 얼음 속에서 시냇물이 흘러 가듯이 하나님께서 해도 저희 가정과 사역 그리고 일터에서 무사히 지나오게 주셨습니다. 취업이 상대적으로 어려워진 시기에 아들은 취업이 되서 재택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딸은 온라인 수업, 인턴 그리고 아르바이트로 분주하게 보냈습니다. COVID-19으로 가족이 함께 지내게 되면서, 동안 가족 캠핑도 다녀 와서 너무 좋았던 해입니다. 그리고 목회는 아직 미약하지만 예배를 멈추지 않았고, 선교를 멈추지 않았으며, 구제도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속 흘러가게 주셨습니다. 또한 학교가 멈춰서 일이 없어졌으나 실직자는 되지 않게 주셨습니다. 아내도 많은 사람을 접하는 일을 하는 중에도 건강하게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물론 것만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모든 것에 하나님의 손길이 있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돌이켜 보면 은혜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칼럼을 있게 손가락에 힘이 있고, 글을 읽을 있는 시력이 있음에 감사를 드립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해를 돌아보니 거저 받는 은혜들 뿐입니다. 년에도, 다음 해에도 그러한 은혜가 넘치겠지요. 아무리 일이 벌어져도 말이죠. 하나님의 자녀들만이 믿고, 감격하고 기뻐하는 은혜가 돌단교회 식구들과 모두에게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풍성하기를 기도드립니다.


(시편 116:5)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의로우시며 우리 하나님은 긍휼이 많으시도다

#330(12/19/20) “오라 하실 때”

jesusinheaven

지난 주에 텍사스 샌안토니오에서  목회하셨던 이세영 목사님께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텍사스에서 목회할 달에 번씩 모임에서 뵈었던 목사님입니다. 약간 느린 말투에 항상 인자한 인상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암으로 오랫동안 투병을 하고 계심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으로 따지면 연세가 많으신 것도 아닌데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가장 최근의 모습을 보고 싶어서 교회의 설교 동영상을 검색해서 보았습니다. 전의 설교가 마지막 설교였습니다. 얼굴에 살이 하나도 없어서 목사님을 알아 없었습니다. 노인 분이 서있기도 힘들어서 주위 사람의 부축을 받아 의자에 앉은 모습이었습니다. 말하기도 힘들어서 몰아 쉬면서 천천히 말을 이어 가고 있었습니다. 분이 이세영 목사님이라니 믿기지가 않을 정도였습니다. 국제결혼한 가정이 많은 교회여서 언제나 영어로 통역하는 분이 함께 말씀을 전합니다. 목사님께서 지나 목회의 소회를 밝히는 부분 부분에서는 통역하는 자매님이 눈물을 적시곤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후임 목사와 관련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문제를 정리해 주시면서 연신 모두 자신의 책임이라고 자책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서로 사랑합시다라며 자신이 떠난 교회가 분열되지 않고 함께 사랑으로 교회가 세워지길 간절히 바라는 말씀을 전해 주셨습니다. 교회의 규모와 상관없이 어떤 교회든지 사람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 잡음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교회에 어떤 잡음이 일어나면 목사님은 항상 사랑과 인내와 소망의 목회를 오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예수님의 성정을 닮고자 부단히 애쓰신 목사님이셨습니다. 그리고 설교 중에 하나님께서 항상 가라 하셔서 순종했는데 이제 오라 하신다고 말씀을 전했습니다. 누구나 오라 부르심에도 순종해야 하지만 목사님은 이르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마음이 아팠습니다.

 하나님께서 언제가는 저도 오라고하실 때가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누구도 피할 없는 순간입니다. 저는 어떻게 반응하고, 어떠한 말을 남길 있을 지를 잠깐 생각해 보았습니다성경에 보면 사도 바울은 자신의 죽음을 두고 마지막 서신은 디모데후서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영생의 소망과 천국의 소망을 말합니다. 믿음의 일꾼으로 흔들리지 않고 성실하게 그리고 거룩하게 살아가길 바라는 마지막 글을 적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목회와 관련해서 이것 저것을 부탁하고 사람들의 이름을 나열하면서 관계들을 정리하는 모습을 있습니다. 저도 어쩌면 목회에 대해서 그리고 여러 관계에 대해서 어떤 말을 남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바라는 것은 말보다도 하나님께서 오라하실 때에 언제든지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웰다잉(well-dying)하는 인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딤후4: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329(12/12/20) “온도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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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에 장만한 차콜 그릴로 폭찹(Pork chop) 도전해 보았습니다. 인터넷에서 동영상을 보면서 고기 육즙이 남아있게 하는 레서피를 알게 되었습니다.  레서피대로 돼지고기 뒤로 올리브 오일을 바르고, 시즈닝(seasoning) 가루를 뒤로 충분히 뿌려 주었습니다. 그리고 냉장고에 넣어 숙성을 시켰습니다. 고기를 익히기 위해 그릴에 차콜을 올려 놓고 불을 피웠습니다. 검은색 차콜이 회색이 때까지 기다렸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그리고 냉장고에 재놓은 고기를  꺼내서 4분씩 앞뒤로 센불에서 익힌 , 열기가 없는 쪽에 고기를 두고서 그릴 뚜껑을 덮었습니다. 그리고 15분씩 뒤로 뒤집었습니다. 그런데 레서피 대로 따라 했어도 불안한 것은 고기가 어느 정도 익고 있는지 초보자의 입장에서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들이 사둔 꼬챙이가 달린 온도계를 사용해 보았습니다. 돼지고기의 중심 온도가 160 이상이 되면 좋다고 합니다. 온도 기준으로 폭찹을 만들어서 가족이 함께 먹었습니다. 아들과 딸이 맛있다고 하고, 아내는 레스토랑에서 나오는 것보다 맛있다고 했습니다. 뿌듯했습니다. 두꺼운 고기가 익으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이었습니다. 온도계한테 고마움을 느꼈습니다.

 우리의 영적인 온도를 재는 온도계가 있다면 현재 나의 영적인 온도 또는 성숙도는 어느 정도일까?’하고 자문해 봅니다. 그리고 말씀이 레서피를 대신하고 말씀에 도전 받고 순종할 나의 영적 온도가 뜨거워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십자가에서 허무하게 돌아가신 것으로 생각하고 엠마오로 향하는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성경을 그대로 풀어서 전했을 그들의 마음이 뜨거웠다고합니다.


(누가복음 24:32)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사실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뜨거운 불은 항상 함께 했음을 성경을 통해 발견할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모세를 부르실 불꽃 가운데서 부르시고, 이스라엘 민족을 광야에서 이끄실 불과 구름 기둥으로 이끄시고, 시내산에서 불과 연기 가운데 임하셨습니다. 신약에서는 오순절에 불의 혀가 갈라지는 것과 같은 성령님의 임재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같은 하나님의 임재와 함께 매일 살아간다면 나의 마음은 항상 따뜻함을 유지할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만일 하나님께 영적 온도계가 있다면, 성숙하게 익어가는 그리스도인으로 여김받을 있으리라 생각해 봅니다. 오늘 하루 따뜻했는지 또는 냉냉했는지 하나님의 영적 온도계를 마음 깊이 보면 어떨까요? 점점 차가워져 가는 세상 가운데서 따뜻함을 잃지 않는 저와 모든 그리스도인이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328(12/05/20)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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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 서양의 정의의 여신상 다른 모습입니다. 눈에 안대를 두르지 않고, 손에는 법전을 들고서 앉아 있는 모습입니다. 물론 어떠한 의미를 두고서 정의의 여신상모습을 바꾸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존의 정의의 여신상 모습이 개인적으로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기존의 모습은 안대를 두르고, 손에는 저울을 그리고 다른 손에는 칼을 들고 있는 모습입니다. 눈을 가린 것은 주관적인 판단을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저울을 것은 모든 사람에게 형평성 있게 법을 적용하겠다는 것이고요. 다른 손에 칼을 것은 엄격하게 법을 집행하겠다는 의미입니다. 만일 이렇게만 법이 판단되고 적용된다면 억울한 사람이 많이 줄어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이 만들고 집행하는 법은 태생적으로 완벽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법은 구멍이 있고, 틈을 타서 법을 악용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러한 법에 대한 불신감을 표현하는 말로 이헌령비헌령(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이나 유전 무죄, 무전 유죄라는 말도 회자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이런 인간 법의 취약함을 지혜의 왕인 솔로몬을 통해 적게 했습니다.

(전도서3:16) “ 내가 아래에서 보건대 재판하는 거기에도 악이 있고 정의를 행하는 거기에도 악이 있도다

이러한 인간 법의 불의와 악을 두고서 솔로몬은 염세주의에 빠지거나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믿는 하나님이 참된 재판장이 되시고 참된 판단을 하실 믿었기 때문입니다.

(전도서 3:17) “내가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의인과 악인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니 이는 모든 소망하는 일과 모든 행사에 때가 있음이라 하였으며

평등하지도 의롭지도 않은 재판과 집행이 전부이고 끝이라면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이 정글의 짐승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허울좋은 법일 약육강식의 힘의 원리만이 지배한다면 말이죠. 하지만 하나님의 심판은 오늘도 유효하고 최종 심판도 하나님께서 내리실 것을 믿는다면 억울해서 절망 가운데 살지 말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진짜 심판이고 마지막 심판이고 가장 공정한 심판이 것입니다. 내가 머물고 있는 가정, 교회, 직장, 그리고 나라의 모든 심판은 하나님께 최종적으로 맡기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면 좋겠습니다

#327(11/28/20) “티”

campingfire

 1 2 동안 가족 캠핑을 다녀왔습니다. 가까운 국립공원이 마침 11 말까지 곳이 있어서 다녀 있었습니다. 캠핑을 준비하다 보니 처음으로 사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예를 들면, 텐트, 텐트 밑에 까는 (Footprint), 에어 매트리스(Air Mattress), 렌턴, 화목(firewood), 헤드램프(headlamp flash)  등등. 인터넷을 통해 가격을 비교하면서 물건을 하나 하나 준비하다가 문득 아이들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거의 새로운 물건들만 구입한다는 것은 지금까지 번도 캠핑을 적이 없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사실입니다. 어떤 목사님은 미국 주를 번했다는 , 자녀들이 질릴 정도로 국립공원을 다녔다는 그리고 자녀들하고 낚시를 간다는 이야기도 들어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순간 나도 자면서 다녀 올까하는 생각을 보지 못했던 같습니다. 자녀들 하고 유명한 놀이공원을 다녀 왔다고 해도 텍사스에 있을 놀이 공원 다녀 오고, 버지니아에서는 나이아가라 폭포에 다녀 것이 전부인 같습니다. 핑계를 대자면 사역에 바빴고, 일에 바빴고, 그리고 경제적 여유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여기 저기 다녀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처음 사는 물건들을 통해 아이들과 함께 캠핑 보지 못한 티가 났습니다. 아이들한테 미안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캠프 사이트 예약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물건을 하나 하나 준비하고, 준비물을 체크하고, 물건을 싣고, 내리고, 운전하면서 이번에 가족을 조용히 섬겨 보려고 했습니다. 가족이 캠프장에 가서 무엇을 하는 것에 초점을 두지 않고, 단지 함께 하는 의미를 마음이었습니다. 자연과 더불어서 가족과 함께 편한 시간이 되기를 바랬습니다. 그런 바램으로 1시간 동안 걷고, 화로(Fire Pit) 불을 피우고, 마시멜로를 구워 먹는 동안 해보지 못했던 것들로 모두 함께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런 시간을 축복이라도 하듯이 예상했던 것보다 날씨도 좋았고, 캠프장 시설도 여러 모로 좋아서 감사했습니다.

 내가 자녀들에게 부족했던 것이 어느 순간에 티가 나듯이 우리의 신앙 생활의 부족함도 어느 순간에 결국 티가 있습니다. 잘하면 잘하는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말이죠. 티를 내려고 해도 사실 자신이 먼저 알고, 다음 가족이 알고, 이웃이 차례로 알게 마련입니다. 숨길 수가 없습니다. 언행이 어느 시점에서는 티를 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하면 잘한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모습 그대로 겸손히 하나님께 가져 나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고쳐 주십니다. 겸손한 예수님의 제자로 티를 팍팍 내며 멋있게 살아 가는 모두가 되면 좋을 같습니다.

(2:46-47)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