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6(05/01/21) “집에서 떡을 떼며”

brokeBread

  현재 미국에서 COVID-19 백신을 맞은 사람 비율이 44%이며 맞은 사람은 30% 이르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높은 접종률입니다. 버지니아는 일일 확진자 수가 1 중순에 만명, 일일 사망자 수는 3 400여명으로 정점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일일 확진자 수가 천명대로 떨어졌고, 일일 사망자 수는 여명으로 대폭 줄어 들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바이든 정부는 백신을 접종한 사람들의 야외 활동과 모임에 대한 규제를 완화한다는 발표를 했습니다. 그래서 돌단교회는 5 2 주일부터 대면예배를 다시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물론 현재 저희 가족과 성도님들이 모두 백신을 접종한 상태입니다. 그리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모이기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팬데믹 이전에는 교회에서 모이는 것이 당연했고 문제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팬데믹 이후에는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에서 그리고 서로의 건강을 위해서 온라인 예배를 드려왔습니다. 인터넷이라는 네트워크가 있어서 가능했던 일입니다. 몸은 떨어져 있지만 있는 곳에서 함께 말씀과 찬양과 예배를 드릴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그러나 뭔가 부족함을 느낄 밖에 없는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부족함을 다시 대면예배를 통해서 회복하려고 합니다.


 성경에서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은 매일 모이고, 함께 교제하는 시간을 가졌음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2 46절에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 유대인들이 안식일에만 성전을 찾은 것이 아니라 매일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다고 합니다. 성전 문지방이 닳도록 그들은 성전 중심으로 생활했음을 있습니다. 그렇게 모인 하나님의 교회(건물이 아님)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함께 교제했습니다. 물론 온라인을 통해서 서로 삶을 나누는 교제를 있습니다.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들으면서 상담을 수도 있습니다. 예배도 드립니다. 하지만 가지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집에서 떡을 때는교제 행위입니다. 이것은 어떤 집에 모여서 서로 얼굴을 맞대고 음식을 만들고 그리고 나누는 구체적인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비대면 예배는 대안이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예배는 대면예배입니다. 많은 백신 접종으로 인해 점점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교제하고 찬양하고 예배하는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기대합니다.

(149:1) “할렐루야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성도의 모임 가운데에서 찬양할지어다

#345(04/24/21) “이름이 뭐야?”

whats-your-name

 ‘압둘이라는 저학년 초등학생이 스쿨버스 번호를 들고 있는 학생인 올리비아에게 이름이 뭐야?”하며 계속 물어봅니다. 학교에 때마다 물어보고, 5 사이에 두세번 물어 보기도 합니다. 그리고 페이지라는 학생은 바닥을 신발로 문질러 뿌드득 뿌드득 소음을 만들고, 의자를 주먹을 팡팡 치기도 합니다. 알고 보니 학습장애(LD: Learning Disability) 가지고 있는 학생들입니다. 탑승한 학생들의 명단을 보니 학습 장애를 가진 학생들이 간간히 보였습니다. 혹시, 우피 골드버그(Whoopi goldberg),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 티보우(Tim Tebow), 마이클 펠프스(Michael Phelps), 하위 맨델(Howie Mandel) 공통점을 아시나요? 감이 오셨겠지만, 모두 자랄 학습장애가 있었던 유명인들입니다. 우피 골드버그, 스티븐 스필버그, 티보우는 난독증(Dyslexia), 마이클 펠프스는 ADHD, 하위 맨델은 ADHD OCD 있었습니다. 학습장애가 있다고 해서 반드시 지능이 떨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능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지능은 정상이고 특정 분야(말하기, 쓰기, 읽기, 듣기, 추론 )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러한 학습장애는 선천적인 요인 또는 후천적인 요인들로 인해 발생할 있다고 합니다. 신경에 문제가 생기거나 심리적으로 문제가 생겨서 학습을 하지 못할 있습니다. 또는 부모의 잘못된 양육이나 훈육 그리고 지지나 격려의 부족이 원인이 있으며, 이러한 가족이나 환경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학습장애가 나타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학습장애의 유형을 정확히 진단하고 그에 맞는 특별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압둘 페이지 행동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압둘 의미없이 계속 이름을 물어보는 것을 보면서 나와 하나님의 관계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반복해서 부르지만 하나님의 이름의 뜻을 잊고서 헛되게 부른 적은 없는지 말이죠. 입에 습관적으로 부르는, 한숨 비슷하게 쉬는 이름으로 부르지는 않는지 말이죠. 하지만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그렇게 부르고 있다면 잘못 알고, 잘못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영적인 학습장애일 있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출애굽기에 스스로 있는 (I AM WHO I AM)’라고 자신의 이름을 나타내셨습니다. ,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모든 곳에 계시고,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능력을 갖고 계신 분이십니다. 스스로 모든 것을 충족하시고, 부족함이 없는 전능자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을 주문외우듯이 가볍게 부르고 있다면 다시 하나님의 이름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이름의 의미를 잊지 않고 마음에 새기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3: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344(04/10/21)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

moses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부르셔서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가운데 하나님만이 있는 놀라운 역사를 있습니다. 단적인 예가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복음을 전하다 순교를 당했지만 피의 제단 위에 많은 교회가 세워지고 많은 민족에게 복음이 지금도 전파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계획은 놀랍고 항상 성취됨을 우리는 믿을 필요가 있습니다.

출애굽기 3:1-12절까지 보면 하나님께서 왕족에서 일반 서민으로 전락한 모세를 부르시는 장면입니다.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의 자유를 위한 하나님의 놀랍고 구체적인 과정을 살펴볼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은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시기 위해 첫째로, 리더를 선택하십니다.(4) “모세야, 모세야하면서 하나님은 리더를 선택하셨습니다. 여기서 리더는 일반적으로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입니다.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일이 되도록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내가 있는 곳에서 하나님의 일이 되도록 영향력을 미치는 위치에 있다면 우리 각자는 부르심 받은 리더들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리더에게 미션을 주십니다(10). 모세에게 주신 미션은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나오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 무모해 보이는 미션이었습니다. 하지만 미션은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기 위한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배경을 가진 미션이었습니다.

셋째, 하나님은 리더와 함께 하십니다(12 ).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모세를 다독여 주셨습니다. 모세는 피하고 싶었고 마음을 알고 있던 하나님은 미션만 던져 주고 무책임하게 팔짱만 끼고 계시지 않았습니다. 모세가 용기를 가지고 순종하며 나갈 있게 지원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넷째, 하나님은 미션을 이루게 하십니다(12 ) “네가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다음에라면서 앞으로 이뤄질 일을 말씀해 주십니다. 일어 미션의 성취입니다. 하나님은 지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미션이 완료되게 하십니다. 그래서 사람은 불안한 상황에 마음이 흔들지 않고 끝까지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각자의 미션이 이뤄지게 주십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부르셔서 하나님의 일이 되게 하시는 , 과정 가운데 놀랍고, 사람이 없는 일들을 통해 미션들이 성취되게 하셨습니다. 두려움에 움츠렸던 모세가 순종하자 하나님은 집중적이고 놀라운 지원을 쉬지 않으셨습니다. 예를 들면 바로 앞에서 10 재앙은 누구도 흉내 없었고, 홍해를 양쪽으로 갈라서 마른 땅을 밞게 하셨고, 하늘을 열어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셨고, 바위를 터트려 나온 물로 갈증이 사라지게 하시고, 가나안 땅을 정복하여 삶의 터전을 이루게 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 가운데 사람을 사용하시고, 지원해 주시고, 놀랍게 이루어 주십니다. 무엇을 위해서 일까요? 물론 하나님은 당신의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도 하나님의 약속 안에 있습니다.

(23:19)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343(04/03/21) “손 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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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이사한 미시간(Michigan) 주의 디트로이트(Detroit) 시를 비행기를 타고 다녀왔습니다. 직장에서 일하면서 집을 보고, 이삿짐을 정리하다 보니 아직 필요한 것이 많아 보였습니다. 중고 소파를 샀는 입구가 좁아서 문짝을 뜯고서 간신히 들여 놓을 있었습니다. 문고리를 새로 달고, 변기 커버도 조용한 것으로 교체하고, 이것 저것 필요한 것들을 채워 주고 오느라 도시를 구경할 시간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화요일에 비행기를 타고 디트로이트에서 버지니아에 있는 덜레스(Dulles) 공항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비행기 기장이 버지니아에 있는 덜레스 공항의 날씨는 바람이 심하게 분다고 안내 방송을 합니다. 공항에 도착하기 20 전부터 기체의 진동이 느껴졌습니다. 심한 바람의 영향인 했습니다. 마치 하늘 위의 비포장도로를  달려 가는 듯했습니다. 아내가 손을 어느 잡고 있습니다. 무서웠나 봅니다. 그리고 갑자기 기체가 낙하하듯 아래로 툭하고 내려갔습니다. 아내가 손을 잡고 눈도 지긋이 감았습니다. 무서웠나 봅니다. 사실 저도 높은 곳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똑같이 느낌은 별로 좋지 않았지만 애써 담대해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최근에 아내의 손을 가장 오래 잡아 날이었습니다.

 절벽에 떨어진 양을 구하려고 목자가 손을 뻗어 구해주는 그림을 있습니다. 목자의 사랑이 느껴지는 그림이었습니다. 누군가를 도와 뻗은 손은 마음도 함께 전달 됩니다. 그래서 누구를 도와 도움의 손길이라고 하는 같습니다. 2010년도에 버지니아에 이사 왔을 리버티대학교를 우리 가족이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횡단보도를 건너는 찬욱이가 동생 수정이 손을 잡고 건너는 모습이 지금도 기억납니다. 동생을 챙기는 말이 아니라 손을 잡고 건너는 모습이 듬직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힘들 도움의 손길이 있다면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힘든 사람에게 손을 내민다면 행복한 마음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에 사역 하시면서 많은 사람을 도우실 언제나 손을 사용하여 병자를 고치시고 먹이셨습니다. 부활하신 후에는 불신하는 도마에게 믿음을 주시려고 못박히신 손을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 인생 가운데 절벽에 떨어진 듯하고, 마음이 아프고, 외롭고, 몸이 아파 어찌 없는 상황에 있는 분이 계신가요? 그렇다면 우리 예수님의 손을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손은 능력의 , 도움의 , 구원의 손이 되십니다. 따뜻한 사랑의 손길이십니다. 내가 어떤 상황에 있든지 손을 기억하며, 손을 붙잡으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면 좋겠습니다.

(베드로전서 5:6)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의 능력의 아래로 자기를 낮추십시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높이실 것입니다

 

#342(03/26/21) “활짝 핀 꽃처럼”

lily

이번 4일동안 온라인으로 훈련을 받았습니다. 아침 10시부터 저녁 7시까지 4 꼬박 진행되는 상담관련 훈련 과정이었습니다. 중간에 휴식 시간이 10분씩 있었지만 하루 종일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 있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여러 나라에 흩어져 있는 부대에서 종교관련 근무하는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독일, 푸에르토리코, 미국 주에서 사람들이었습니다. 주로 기독교였지만 유대교 채플린도 처음 봤습니다. 이렇게 다양 지역과 종교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군생활 가운데 힘들어 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섬길까하는 마음으로 수업을 들었던 같습니다. 그런데 지하에 있는 서재는 공기가 좋은 편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창문을 열기에는 바깥 공기가 여전히 추웠습니다. 그리고 며칠은 비도 추적추적 내렸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모니터에서 강의하는 강사의 커리큘럼에 따라서 그룹 발표하고, 질문에 답하고, 하루 전에 미리 강의 내용을 영어 사전을 찾아 가면서 읽어 보고 하다 보니 4일이 훌쩍 지나 갔습니다. 4 동안 지하 생활을 했습니다. 그리고 배우고 얻은 것도 많았습니다. 누구를 가르치기에 앞서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이 지하 생활을 벗어난 날입니다. 오늘은 수정이가 친구와 약속이 있어서 엄마 차를 가지고 나가서 퇴근하는 아내를 픽업하러 가야 했습니다. 가는 동안 활짝 하얀 꽃들을 보고 얼마나 마음이 좋던지요. 4 동안 고생했다고 활짝 하얀 꽃들이 위로해주고 환영해 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2천년 복음이 되신 예수님께서 사명을 완수하시고자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많은 군중들이 호산나 외치며 맞이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시기하는 제사장들과 율법주의자들의 공격은 심해지고, 그들은 예수님을 목요일에 불법적으로 체포하고 심문했습니다. 그리고 무지한 사람들을 선동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했습니다.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보이는 암울한 날이었습니다. 손에 피를 묻힌 자들은 시름 놓았을 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동시에 모든 예수님의 모든 말씀도 죽은 것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는 견고해진 같아 회심의 미소를 지었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활짝 꽃처럼 3 만에 영광스럽게 부활하셨습니다. 무덤이 증거입니다. 직접 눈으로 목격한 많은 사람들이 증인입니다. 증인들의 제자들이 전한 복음이 안에 있으며, 우리 또한 증인들입니다. 허물과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들을 구원하시려고 부활의 문을 예수님께서 활짝 열어 주셨습니다. 죽은 자들이 있는 무덤을 박차고 나오셔서 모든 인류의 부활의 소망이 되셨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힘든 기간을 지나는 모든 사람에게 여전히 위로가 되시고, 소망이 되시는 예수님은 마음 속에서 시들지 않는 활짝 꽃처럼 항상 계십니다.

(11:26-2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341(03/20/21) “계급”

army

지난 주에 메릴랜드 락빌(Rockville) 있는 예비군 부대에 처음 출근했습니다. 30 의무적으로 군대를 복무한 예비군과 민방위 과정을 한국에서 마쳤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자원해서 미국 군대에 입대하고 처음으로 군인 모자와 군복을 입고서 부대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부대까지 50분정도 걸렸습니다. 부대 수속 관련해 처리할 것이 있어서 하사관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하사관이 빌딩 안에서는 설룻 (No Salute Zone)이라서 모자를 벗어야 한다며 친절하게 알려 줬습니다. 훈련을 아직 한번도 않받았기에 몸으로 부딪히면서 배울 것이 많을 싶었습니다. 그런데 하사관들이 나의 끝마다 ‘Yes, Sir’ 붙입니다. 설교할 아멘소리 비슷하게 들렸습니다. 군복 상의 중간쯤에 캡틴(Captain,대위) 계급 마크가 붙어 있어서 계급을 알고 존대하는 같습니다. 그리고 채플린 실의 컴퓨터에 문제가 있어서 그것을 고치러 하사관도 처음 만나자 정자세로 서서 인사를 하고 마다 계속 ‘Yes, Sir’ 붙입니다. 얼마나 공손하게 하는지 기분이 좋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적응이 안됐습니다. 시간이 걸릴 같습니다.

처럼 군대는 한국이나 미국이나 계급 사회임을 다시 확인할 있었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영적인 면에서도 계급이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경은 우리 하나님을 만군의 여호와(the LORD of the hosts)’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영어로 ’host’ 집주인이라는 뜻과 함께 군대라는 뜻도 있습니다. , 모든 군대의 주인이요 대장되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최고 사령관은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영적인 삶에서 최고의 계급을 가지고 계신 지휘관이 되십니다. 그러면 우리 모두가 존경하며 공손하게 예의를 갖추면서 따라야할 대상은 우리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군대에서 ‘Yes, sir’하듯이 언제나 아멘하면서 따라야 분은 오직 우리 대장되신 하나님밖에 없다는 것이죠. 각자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분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신앙 연수가 적든지 많든지, 가진 것이 많든지 적든지, 세상 지위가 높든지 낮든지 상관없이 우리는 분의 자녀이고, 대장되신 하나님의 부하들일 뿐입니다. 물론 교회의 질서를 위해서 직분을 세우셨습니다. 질서를 무시한다면 몸된 교회가 어려움을 겪을 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여전히 하나님 앞에서 각자의 신앙생활의 자세는 최고 사령관되신 하나님 앞에서 부하처럼 따라야 된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계급도 없는 훈련병 불과하다는 생각조차 듭니다. 신앙은 평생 훈련의 연속입니다. 오늘도 우리 최고의 사령관되신 하나님께 존경의 경례를 하고, 명령에 따르며, 명령에 따른 성과에 하나님께 감사하고 영광을 돌리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이사야 8:13) “만군의 여호와 그를 너희가 거룩하다 하고 그를 너희가 두려워하며 무서워할 자로 삼으라

#340(03/06/21) “다시 올 때”

dogatdoor

찬욱이가 미시간에 정도 머물다가 다시 집에 돌아 왔습니다. 편도로 9시간 정도 되는 장거리 운전을 하고 왔습니다. 저녁 10 정도에 강아지 토비가 현관 앞으로 가서 코를 킁킁 거립니다. 그리고 꼬리를 흔들더니 난리법석을 떱니다. 찬욱이가 것을 같습니다. 찬욱이가 짐을 들고서 집에 들어 오자 토비는 거실과 부엌을 뱅글뱅글 돕니다. 컹컹 짖으면서 흥분합니다.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인형을 바삐 찾아서 물고 찬욱이한테 달려갑니다. 그런 토비를 찬욱이가 안아 들자 연신 찬욱이를 핥습니다. 그리고 찬욱이도 격하게 반겨주는 토비를 보면서 환하게 웃었습니다. 토비는 동안 찬욱이를 잊지도 않았고, 찬욱이가 것도 잊지 않은 합니다. 달이란 기다림 끝에 다시 보게 찬욱이를 향한 환영의 모습이 감격스러울 정도였습니다.

토비를 보면서 우리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기다림은 어떠한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전에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신 분은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많은 성도들이 분을 기다리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누가 언제 어떻게 맞이하게 될지는 없습니다. 신실하신 예수님께서 약속하셨으니 식언치 않고 이루실 것을 믿으며 살아갈 뿐입니다. 결국 때가 되면 어느 순간에 초림하셨던 예수님께서 하늘 영광 가운데 하나님의 성도들을 부르시며 재림하실 것입니다. 부르심의 순간에 참으로 주님을 환영하는 감동스러운 장면을 마음 속에 그려봅니다.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살았던 성도들이 보여 장면 말이죠. 그들은 순간도 다시 오실 주님을 잊지 않고 성도들입니다. 그리고 위에 살아가면서 주님께서 주신 것들을 잊지 않고 감사하며 성도들 것입니다. 모든 영광을 주님께 올려 드리며 찬송과 경배를 쉬지 않을 성도들일 것입니다. 보다 감격적인 순간은 없을 것입니다. 만일 우리 세대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약속대로 다시 오신 다면 이러한 감격적인 순간을 항상 소망하며 살기를 기도드립니다. 보다 복스러운 소망은 없기 때문입니다.

(디도서 2:12-13)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세상 정욕을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세상에 살고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339(02/27/21) “안전 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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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트 29 길과 66 고속도로 인터체인지 공사가 한창입니다. 이제 제법 인터체인지 모양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동안 많은 신호등으로 겪었던 교통 체증이 어느 정도 사라질 것을 기대해 봅니다. 하지만 아직도 공사가 끝난 것이 아니어서 필요에 따라 차선이 자주 변경되고 다시 그려지고 있습니다. 최근에 눈이 내리고 제설작업을 하는 바람에 차선들이 희미해 같았습니다. 낮에도 차선이 거의 사라진 구간이 있어서 위험한데, 비가 내리는 저녁에는 정말 위험해서 속도를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차선을 혼동해서 주행한 적도 있었습니다. 만일 뒤에 오는 차가 있었다면 위험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 거의 사라진 차선 위로 선명한 흰색 차선이 새로 그려졌습니다. 시원스럽게 그려진 차선이 반갑기 조차 했습니다. 흰색 차선으로 운전하는 편하고 안전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인생 길을 가다 보면 여러 시험 환란과 유혹에 내가 가는 길이 보이지 않는 때가 있습니다. 내가 하루 하루 살아가면서도 지금 가는 길이 맞는지 의심과 후회와 원망 그리고 불평이 찾아 수도 있습니다. 그런 때는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위험한 순간일 있습니다. 특히, 신앙의 길을 걸어 가다가 세상과 타협해서 탈선하면 보다 위험한 순간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빨리 나의 탈선을 깨닫고 다시 하나님께서 그어 주신 선명한 인생 길로 돌아가는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기도합니다. 선명한 인생 길은 하나님의 말씀과 인도하심을 따르는 길입니다. 그리고 길은 하나님의 권위를 세워드리는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려주신 길로 되돌아 갔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께서 세우신 규칙과 원리를 따라서 순종하는 길로 되돌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인생 길은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테두리 안에서 있는 것들을 하며 살아가는 길입니다. 결과로 우리는 안전한 인생 , 신앙의 길을 걸어갈 있습니다. 나의 신앙의 길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길에서 우리에게 여러 가지 신호를 보내시고 대화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모두는 잠깐 길에서 걸어가는 나그네 일뿐입니다. , 나그네는 나그네처럼 살아야 하고, 주인에게는 주인 대접을 해드려야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이 안전하게 인생 길을 걸어가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도 인생 길에 안전 주행하는 모든 분들이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3:5-6)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길을 지도하시리라

#338(02/20/21) “지혜”

wisdom

사람이 살면서 모든 분야에 지혜가 필요합니다. 화가, 음악가, 작가, 과학자, 그리고 정치가 들에게 각기 지혜가 필요합니다. 일반적인 지혜의 정의는 습득한 지식을 기반으로 사물을 판단하는 능력입니다. 판단능력이 있어야 인생을 바르게 살아갈 있습니다. 그러면 최고의 판단 능력은 어떻게 얻어질 있을까요? 성경은 답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요. , 하나님의 경외할 때만 인생 최고의 판단능력, 지혜를 얻을 있습니다. 그리고 야고보서 3 13-18절에서는 하늘의 지혜와 땅의 지혜가 있음을 비교하며 설명합니다.

 먼저 땅의 지혜는 가지로 설명합니다. 가장 특징은 하나님의 지혜를 배척한다는 것입니다.(15) 그래서 세상적, 정욕적, 마귀적인 지혜입니다. 이러한 지혜로는 하나님을 없으며 결국 사라질 지혜라고 합니다(고전1:21). 또한 이러한 땅의 지혜는 사람을 교만케하는 지혜입니다. 사람 사이에 다툼이 일어나게 하고, 화합보다는 분열, 친교보다는 불화가 일어나게 합니다.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들도 땅의 지혜 때문에 일어나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두번 째로 야고보서 3장에서는 하늘의 지혜를 말합니다. 하늘의 지혜는 위로부터 지혜입니다. 사람의 노력으로 얻어지는 지혜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경외할 얻어지는 선물입니다. 그래서 하늘의 지혜는 선한 지혜로서 많은 은혜를 베풉니다. 야고보 형제는 특성을 8가지로 설명합니다: (17-18)

어떠한 죄도 용납하지 않는 성결,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화평, 이기적이지 않고 실수를 너그럽게 용서하는 관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서 이해 양보하는 양순, 예수 그리스도의 무조건적 은혜가 나를 통해 드러나는 긍휼, 선한 삶을 살면서 맺는 선한 열매, 선입견이 없는 편벽이 없음, 그리고 꾸밈, 겉치레, 속임수가 없는 거짓 없는 삶입니다.

여덟 가지가 하늘의 지혜가 무엇인지를 가늠해 줍니다. 이러한 지혜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요한 지혜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내가 많은 것을 소유해도 지혜가 없으면 그것을 사용할 없습니다. 특히 하늘의 지혜가 없다면 말이죠. 하늘의 지혜, 지혜만을 구하는 우리 모두가 되면 좋겠습니다.

(야고보서 3:13)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행함을 보일지니라

 

#337(02/13/21) “날개”

birdonbranch

해부터 근무하게 부대의 선임 채플린은 구딘(Goodin) 목사입니다. 일반 병사로 입대해서 년을 복무를 했습니다. 그리고 소명을 받아 신학을 하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목사가 병원 채플린, 교도소 채플린 등을 하면서 많은 경험을 쌓은 분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예비군 채플린으로 사역을 하면서 현역 채플린이 되기 위해 기도하는 중입니다. 이렇게 경험 많은 사람이 선임이 되어서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3개월의 채플린 장교교육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웨스트버지니아 집으로 올라가면서 온라인 미팅에 참여 했습니다. 미팅을 시작하면서 교육받았을 좋았던 구절을 나누었습니다. ‘ 나뭇가지 위의 새가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는 것은 나뭇가지를 믿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날개를 믿기 때문이다 격언이었습니다. 각자 마다의 날개가 있음을 알고 믿어야 한다는 내용으로 나누었습니다. 어쩌면 우리 각자에게는 어떤 날개가 이미 주어졌음에도 날개를 알아채지 못할 수도 있고, 알아도 게을러서 날개를 펴기 싫어할 수도 있으며, 또는 날개를 불편해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날개 다른 말로 하면 은사 있습니다. ‘은사 선물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선물 대한 바른 자세는 감사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면 두려울 것이 없다고 믿습니다. 우리 각자의 은사인 날개가 있다면 하나의 날개가 우리를 받치고 있음도 알아야 겠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날개입니다. 날개 은사 아닌 보호하심입니다. 성경은 이스라엘 민족을 이집트의 노예 생활에서 이끌어 내신 하나님을 표현할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했다고 합니다(19:4). ‘독수리 날개같은 보호하심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도 되십니다. 그러면 우리에게는 종류의 날개가 있는 같습니다. ‘은사 날개와 보호하심 날개입니다. 날개를 생각하며 감사하고 의지하며 살아간다면 우리는 결코 두려워하지 않고 세상을 살아갈 있습니다.

사회, 정치, 경제가 아무리 요동치고, 내가 하는 일이 앞이 안보여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느 시대든지 시대만의 어려움과 두려움이 자리잡고 있었으나 오직 하나님께 온전히 감사하고 의지하며 살아간 사람들은 두려움 없이 오히려 기쁨을 누리며 살았습니다. 어두운 감옥에 갇혔던 바울과 실라가, 카타콤의 순교자들이, 지금도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감옥에 있는 크리스찬들이 오히려 두려움을 이겨낸 놀라운 삶을 전해 줍니다. 그러한 놀라운 삶은 나의 날개를 알고 하나님의 날개를 의지하는 성도가 보여 있는 위대한 모습이라고 믿습니다. 우리모두가 그렇게 있기를 하나님께 기도드립니다.

 (출애굽기 19 4)“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