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6(09/12/20) “쫄면”

jjolmyeon

아내는 쫄면을 좋아합니다. 연애할 때부터 분식집에 가면 쫄면을 자주 시켰던 같습니다. 아내가 며칠 쫄면을 맛있게 그릇 만들었습니다. 새콤달콤한 양념장과 함께 야채를 곁들인 쫄면이 먹음직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젓가락 양만큼만 달라고 해서 먹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심하게 체했습니다. 이틀 동안 전혀 배가 고프지 않았습니다. 몸무게는 5파운드 이상 빠졌습니다. 사실 아내가 만들어 쫄면, 먹음직한 쫄면의 유혹에 넘어가서 체한 것이 처음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젓가락 양만큼만 달라고 하고 대신 야채를 많이 담아서 먹었습니다. 그런데도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체해 버렸습니다. 머리에 두통도 왔습니다. 소화제를 먹고 지압을 하면서 응급처치를 했습니다. 그리고 이틀 조금씩 식사를 다시 시작해서 지금은 괜찮아 졌습니다. 쫄면을 먹은 여러 체했고 그리고 다시는 먹겠다고 후회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먹고서 체한 모습이 어리석어 보였습니다. 몸에 맞지 않아서 고통을 당했다면 다시 같은 그렇지 않습니다. 유혹을 받는 순간에 이번에는 괜찮을 거야하면서 합리화하고 슬쩍 넘어가는 것이 문제 같습니다. 몸이 아프면 하나님, 교회, 가족, 이웃을 위해서 있는 일들이 제약을 받게 되는 말이죠. 그래서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이 신앙 생활하면서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몸에 맞지 않는 , 좋지 않은 , 해치는 것은 끊을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영적으로는 그리스도인에게 맞지 않는 , 좋지 않은 , 해치는 것이 있다면 끊을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옛사람, 육신, 죄성, 그리고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들을 끊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요 하늘나라 시민권자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사단의 자녀처럼, 세상에 속한 사람처럼 살아간다면 영적으로 아픈 인생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아님을 알면서도 영적인 선택을 하지 못하고 유혹을 합리화하면서 슬쩍 넘어가면 아플 있습니다. 끊지 못해서 넘어지고, 넘어지는 가운데 허우적거릴 있습니다. 그래서 고리를 끊어야 합니다. 그러면 영적인 침체에서 벗어 있습니다. 영적인 침체를 다른 말로 하면 성령님의 음성에 무뎌진 모습입니다. 하지만 영적 침체에서 벗어나면 성령임의 음성에 순종함으로 성령님께서 주시는 영적 기쁨을 있습니다.

주님을 다시 만나는 날까지 나의 몸과 영혼을 건강하게 보존하며 필요가 있습니다. 각자의 몸에 맞지 않고, 건강을 해쳐서 삼가 하고 끊어야 것은 무엇인지 오늘부터 살펴 봅시다. 그리고 나의 영혼에 맞지 않고, 해쳐서 삼가 하고 끊어 나가야 것은 무엇인지 묵상해 봅시다. 신랑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는 그렇게 열심히 살아서 수고했다고 주님의 칭찬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도 드립니다.


(25:21) ”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315(09/05/20) “사역”

kingdomofgod

예수님께서 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인지 질문하면 죄인들을 구원하러 오셨다 답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땅에서 하신 일을 물어보면 금방 답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을 몰라서가 아니라 하신 일이 너무 많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9 27-38절까지 내용을 보면 예수님께서 위에서 하신 사역이 무엇인지 있습니다. 특별히 35 말씀은 예수님께서 하신 가지 일을 요약하고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가는 곳마다 사람을 가르치셨습니다. 당시 회당에서 가르치셨습니다. 회당은 최상의 교육 장소였습니다. 유대인들이 정기적으로 모이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회당뿐만 아니라 거리, 언덕, , 바닷가 그리고 가정집에서도 열심히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배웠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믿는다고는 말하지만 예수님을 배운다는 말을 많이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과 가르침을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언제나 배우기를 원하십니다.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둘째, 예수님은 가는 곳마다 천국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핵심적인 사역 내용은 천국 복음이고 것을 모든 사람이 알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첫번째 외침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였습니다. 죽음에서 부활하신 40 동안 하신 사역도 언제나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기에 새가 없으셨습니다.

(1:3)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예수님은 땅의 복이 아닌 천국 복음, 그리고 하늘 축복 집중해서 전하셨음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현재와 미래의 사역도 언제나 천국 복음이어야 됩니다.

셋째, 예수님은 가는 곳마다 병자들을 고치셨습니다. 예수님은 가시는 곳마다 병자를 고치셨고, 많은 병자들이 모여들어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므로 어떤 병이든 고칠 있는 분이셨습니다. 그리고 병을 고치신 것은 궁극적으로 천국 복음을 전하려는 수단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병도 아픔도 없는 천국을 가게 됩니다. 천국을 땅에서 일시적으로 체험할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이지요.

예수님께서 위에서 하신 사역은 가르치고, 전하고, 고치는 사역이었습니다. 밑바탕은 천국 복음이었구요. 천국 복음사역을 위해 부르심 받은 사역자들이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라고 믿습니다. 말세지말에 복음을 전하라고 부름받은 일꾼들입니다.

#314(08/29/20) “재교육”

refresher

COVID-19으로 인해 5개월 이상 스쿨버스 운전을 쉬었습니다. 그리고 9 8일에 학기가 시작되지만 학생들은 여전히 집에서 수업을 받게 됩니다. 이로 인해 모든 운전사들에 대한 재교육(refresher training) 실시되었습니다. 개인별로 재교육 받을 날짜와 시간 그리고 장소가 정해졌습니다. 그리고 프리트립(pre-trip: 운전하기 버스 이상 점검) 매뉴얼도 다시 보내 주었습니다. 하지만 매뉴얼을 보지 않고 재교육 장소에 트레이너를 만나러 나갔습니다. 이미 몸에 배여 있다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프리트립을 하고 동네를 바퀴 운전하고 왔습니다. 그런데 프리트립을 하면서 뭔가 모르게 부드럽지 않았습니다.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부분을 제대로 하지 못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희미해진 기억에서 실수였습니다.

마케팅 전문가인 로라 린치는 재교육의 중요성을 가지 말했습니다. “먼저, 장기 기억으로 남길 있고, 실수를 줄이고 생산성을 개선할 있으며, 휴가를 가졌던 학생이나 직원이 효과적인 준비를 있게 한다 했습니다. 그녀는 우리의 기억은 근육과 같아서 계속 자극을 필요가 있으며, 듣고 다시 듣는 기간이 길수록 장기 기억이 있게 준다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운전사들은 5년마다 재교육을 받아야 되고, CPR 교육은 2년마다 재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물론 아는 내용이라서 지루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기관이나 회사에서 재교육을 하는 것은 이유가 있고 효과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의 기억은 한계가 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그렇습니다. 그래서 반복해서 받는 교육이 지루할 있지만 또한 필요합니다. 이처럼 우리의 신앙생활에서도 반복적인 교육, 또는 재교육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성경에 보면 사도 바울에 의해 세워진 많은 교회들의 믿음이 흔들렸습니다. 순수한 복음을 통해 세워진 교회들이 세상의 이론들과 철학과 사상에 물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순수한 복음이 사도 바울의 서신에서 다시 선포됩니다. 다시 말하고, 다시 말합니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를 망각하고 다시 율법적인 삶으로 돌아가는 그들을 보며 복음이 무엇인지 재교육을 시킵니다. 그러한 재교육이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에게도 여전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하는 많은 이론과 사상들이 우리 주위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서 가정과 교회에서 복음과 말씀에 대한 재교육은 적절한 기간을 두고 계속 확인되어 지고 반복되어질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세상은 변해도 변함없는 복음 위에 견고히 있기 위해서 말이죠. 오직 예수 그리스도!

(1: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313(08/22/20) “도전”

mic

KBS1 방송 프로그램인 아침마당 도전! 꿈의 무대 지난 수요일에 방영되었습니다. 여러 무명 가수들이 자신들의 사연을 나누고 기량을 경쟁하는 자리입니다. 요즘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트로트 가수 임영웅씨도 무대에서 5승을 했다고 하죠. 이번에도 성빈이라는 가수가 5승을 도전하는 날이었습니다. 1만명당 3.6 걸리고 치료약이 없는 샤르코 마리 투스병과 투병 중인 26 젊은 청년입니다. 그리고 청년의 열정적인 도전은 5승을 이뤄냈습니다. 그런데 사실 저는 프로그램을 이번에 처음 시청했습니다. 이유는 성빈과 같은 젊은 가수들 사이에 출연한 90 최고령의 할머니 가수 때문입니다. 분은 저의 어머니 윤광남 여사입니다. 저희 아버님이 돌아가신 울적한 마음을 달래시려고 복지관에서 노래를 배우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배호가요제에서 인기상을 타신 83세에 최고령 신인가수가 되셨습니다. 이후에 행사장이나 복지관에 가서 노래 부르며 봉사활동을 즐겁게 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도전! 꿈의 무대 천명의 신청자들 가운데 출연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어머니의 도전은 많은 사람에게 다른 도전을 만들어 듯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의 의미있는 도전은 다른 사람의 다른 도전을 만들어 냅니다. 전에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도전자로 보였을 듯합니다. 나사렛이란 작은 동네 출신인 예수라는 청년이 대중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대중 앞에서 가르침과 말씀 선포와 치유 사역은 권위와 사랑과 은혜가 넘쳤습니다. 하지만 편에서는 엄청난 도전으로 느껴 졌습니다. 소위 감히하면서 불쾌해하고 적대적인 종교지도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도전이 결국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을 통해 성공했을 , 다른 세상을 향한 도전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통해서 이어졌습니다. 많은 핍박과 박해가 있었지만 로마제국이 식민지의 종교 하나라고 여겼던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였습니다. 물론 국교로 받아들여진 다른 문제들이 발생했지만 당시로서는 역사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로마가 정복한 대부분의 지역에 복음이 전파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이것이 의미있는 도전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나이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부름에 기꺼이 새로운 도전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하란을 떠났으며, 모세는 80세에 지도자로 세워지고, 갈렙은 85세에 새로운 개척지를 향했습니다. 도전은 나이 때문에 못하는 것이 아니고 나이여도 있는 것이 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어머니의 응원 구호는 나이는 숫자다! 언제나 청춘이었습니다. 나이를 뛰어넘는 어머니의 끝없는 도전에 다른 도전을 받으며 배웁니다. 도전합시다.

(14:10-12)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황한 사십오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하게 하셨나이다 오늘 내가 팔십오 세로되 ……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312(08/15/20) “실마리”

silmari

어렸을 수사반장이라는 드라마를 즐겨 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최불암씨를 중심으로 여러 형사들이 범인들을 잡는 과정이 흥미진진했습니다. 범인들의 실수와 잡는 과정이 모두 드러나다 보니 범죄에 악용된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습니다. 중에 범행을 부인하는 피의자에게 껌을 씹게 해서 피의자의 치아 구조를 파악하거나 버려진 담배꽁초 하나가 결정적인 증거가 되어 범인을 잡는 장면이 기억에 남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범죄가 점점 지능화 되어서 현장에 증거를 거의 남기지 않는다고 합니다. 대신 실오라기 하나, 신발에서 떨어진 흙까지도 성분분석을 통해 범인을 잡는 최첨단 방식이 동원된다고 합니다. 이처럼 범인을 잡기 위한 , 담배 꽁초, 실오라기 그리고 흙은 중요한 실마리가 됩니다. ‘실마리 사전에 일이나 사건을 풀어 나갈 있는 첫머리; 감겨 있거나 헝클어진 실의 첫머리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우리 삶의 문제들도 이러한 실마리를 발견하면 좋을 같습니다.

 신학대학원 다닐 기독교 상담학 교수님이 수업시간에 반복해서 하신 말씀이 “Your problem! Your problem!”이었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상담하러 오는데 많은 부분이 결국 자신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안에 있다는 것이죠. 우리는 흔히 문제가 생기면 밖에서 찾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가족, 이웃, 사회, 그리고 나라와 같은 외부 환경에서 말이죠. 물론 그럴 있습니다. 구조적으로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환경이 있을 있습니다. 하지만 상담학 교수님은 실마리를 안에서 먼저 찾고 이어서 하나님과 관계에서 찾는 것이 지혜임을 말씀하려고 하셨던 같습니다. 바뀌지 않는 것에 매여서힘들어 하지 말고 바꿀 있는 분을 의지하는 것이 지혜라는 말이죠. 성경에서도 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그러한 지혜로운 삶을 살았음을 묵상하게 됩니다. 요셉은 억울한 환경의 실마리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풀었습니다. 다윗은 죄의 문제를 푸는 해결의 실마리를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면서 풀었습니다. 바울은 잘못된 율법주의 해결의 실마리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풀었습니다.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신앙 여정의 핍박과 두려움의 문제들의 실마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풀었습니다. 이처럼 자신을 빛되신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낱낱이 드러내는 사람은 실마리를 밝은 아래서 찾을 있습니다. 자신, 가정, 교회 그리고 사회에서 많은 문제들이 얽히고 설켜 있어도 실마리는 있기 마련입니다. 다른 곳에서 찾으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가장 지혜로운 방법은 모든 인생 길의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 앞에 나가는 것이 실마리가 믿습니다.

(55:22) “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

#311(08/08/20) “하나님의 일들”

goodshephard

사람들은 환란과 시련을 당하면 자기 연민에 빠지기 쉽습니다. “나는 이럴까?” “내가 나아질 있을까?” “아무리 해봐도 안되네..”하면서 말이죠. 시편 77편을 아삽도 그런 생각을 적이 있었던 같습니다. 하지만 아삽은 이러한 자기 연민이 자신의 문제임을 발견합니다. 지혜로운 아삽의 모습입니다. 아삽은 현재 자신이 고난을 바라보는 시각에 문제가 있음을 깨닫는 순간 시각을 하나님께로 주저 없이 전환합니다.

그래서 시편 77 1절부터 9절까지 자신의 이야기를 했던 아삽은 10절에서 20절까지 하나님’ ‘주님 20회나 사용하여 시각의 전환을 보여줍니다. 아삽이 주님께 방향을 돌리면서 함께 바꾼 것은 바로 그의 생각이었습다. 11-12절까지 보면 그는 기억하겠습니다” “되뇌이겠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무엇을 기억하고 뇌이겠다는 걸까요?  그것은 과거에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을 말합니다. 오래 전에 행하신 기이한 모든 일들을 입으로 소리내며 되뇌이겠다고 합니다. 당장 앞에 크고 기이한 일이 벌어지지 않더라도 과거에 하나님의 크신 일들이 현재 나의 상황에 힘과 용기를 있음을 믿었습니다. 자기 연민에 빠져서 하나님을 반쪽만 보지 않고 하나님의 모든 일을 다시 깊이 생각하겠다는 놀라운 실제적인 고백입니다. 영원토록 임재하시는 동일하신 하나님 앞에 드리는 고백입니다. 아삽이 하나님을 13절에서 고백합니다. “주의 도는 극히 거룩하다고 말이죠.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극히 구별된 일을 하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대표적인 사건이 하나님께서 홍해를 갈라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사건일 것입니다. 20절에 하나님께서 모세, 아론을 세워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신 일을 아삽은 다시 묵상하며 기억하는 것을 있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놀라운 민족적인 은혜를 잊지 않으며 매일을 살아가는 아삽을 보게 됩니다.

 그리스도인 들도 자기 연민 가운데 슬픔과 고통의 늪에 빠지는 경우가 있을 있습니다. 때마다 아삽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목자가 무리를 인도하듯 이스라엘을 인도하신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무리들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를 모든 고난과 두려움을 이겨냈듯이 우리의 선한 목자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를 어떤 고난과 두려움도 넉넉히 이길 있다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현재 당면한 고난을 보기보다는 과거에 나의 고난에서 건져주신 하나님의 일들을 하나씩 기억하고 소리 내어 고백하는 놀라운 기적의 일상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기도 드립니다.

(77:11-22) “ 여호와의 일들을 기억하며 주께서 옛적에 행하신 기이한 일을 기억하리이다 주의 모든 일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며 주의 행사를 낮은 소리로 되뇌이리이다

#310(08/01/20) “걸림돌”

stone

초등학교 내리막 길을 달려 내려오다가 돌부리에 걸려서 넘어진 적이 있습니다. 아직도 다친 무릎의 흉터가 남아 있습니다. 이런 돌부리 같은 걸림돌은 사람들을 넘어지게 합니다. 그리고 가던 길을 멈추게 합니다. 이러한 걸림돌을 두기도 하고 걸림돌 같은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23장에서 걸림돌 같은 그들을 향해 있을진저라고 일곱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포장된 의로운 종교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눈에는 심판 받아 마땅한 복음의 걸림돌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일곱 번이나 저주하신 이유 첫번 째는 구원받을 자들을 구원받지 못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아 천국에 수도 없었지만 믿어서 천국 있는 사람들까지 훼방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심지어 자신들보다 율법적이고 외식적인 사람들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자신들도 지기 힘든 여러 율법들을 다른 사람들의 어깨에 메게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저주하신 두번 이유는 바리새인들이 사람들에게 잘못된 가치관을 심었기 때문입니다. 인도자와 같은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질문하셨습니다. ”어느 것이 큰가?”하는 질문입니다.  ‘또는 성전그리고 예물또는 제단중에서 어떤 것이 크냐는 질문이었습니다. 이에 대한 바리새인들의 답은 성전, ‘제단으로 맹세하면 효과가 없고, ‘,’ ‘예물 가져와서 맹세해야 효과가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그렇게 가르친 적이 없음에도 말이죠. 사실 금은 하나님의 임재하시는 성전 때문에, 예물은 거룩한 제단 때문에 가치가 생기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 속은 탐욕으로 가득 있어서 그런 가치관을 사람들에게 심는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자기들처럼 탐욕스런 분으로 만들어 버렸지만 그조차도 몰랐던 영적으로 앞을 보지 못하는 소위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런 지도자들의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은 참으로 불쌍한 인생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은 예수님의 저주를 받기에 마땅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인임을 세상에 알렸다면 나는 그리스도를 위한 디딤돌이 되어야 합니다.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 예수님은 걸림돌을 너무 싫어하십니다. 만일 나의 , 행동, 그리고 관계를 통해 그리스도의 살아계심이 나타나지 않고, 말씀을 왜곡한 가치관이 전달된다면 나는 예수님이 보기에 걸림돌일 있습니다. 사실 아무리 깨끗하게 산다 해도 흙탕물 같은 세상에서 살면서 작은 얼룩이라도 없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땅에 사는 동안 우리의 사명이 있다면 가운데 있는 영혼을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위해, 주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걸림돌 아닌 디딤돌 되는 것입니다. 보다 멋있는 예수님의 제자를 나오게 하는 사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9:31-32) “그런데 이스라엘은 의의 율법을 추구하였지만, 율법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어찌하여 그렇게 되었습니까? 그들은 믿음에 근거하여 의에 이르려고 것이 아니라, 행위에 근거하여 의에 이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걸림돌에 걸려 넘어진 것입니다.”

#309(07/24/20) “하지만”

family

해는 한국에 마지막으로 갔다 온지 10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리고 해는 어머니께서 세가 되는 해여서 한국에 다녀 생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모든 계획을 접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한국에서 어머니 생신도 가족들만 모였습니다. 한국도 여전히 코로나 바이러스를 조심하고 있어서인지 가족들도 마스크를 쓰고 음식점에 모여서 어머니 생신을 축하하는 모습을 있었습니다. 축하하는 자리를 사진으로만 있어서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우리 가족이 자리에 모인 시간이 많아져서 좋습니다. 찬욱이에 이어서 작년에 수정이가 대학교에 진학하면서 집에는 아내와 저만 남게 되었습니다. 집이 조용해졌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서 수정이가 온라인 수업을 들으면서 지난 3월에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찬욱이는 이번에 대학교를 졸업하고 10월에 출근할 때까지 집에 있게 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당분간 재택근무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요즘 다시 집에 이야기 꽃이 피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쿵쾅거리며 계단을 오르내리는 소리도 괜찮습니다. 집이 다시 활기를 띠고 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한국에 있는 어머니와 형제들을 보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미국에서 우리 가족은 다시 모이는 기회가 되어서 좋습니다.

하지만 앞의 내용과 반대되는 내용을 말할 사용하는 접속사입니다. 좋은 내용이 앞에 나오면 뒤에는 좋은 내용이 나오고, 앞에 부정적인 내용이 나오면 뒤에는 긍정적인 내용을 기술할 사용합니다. 그래서 하지만이라는 접속사는 우리가 균형 잡힌 생각을 있도록 도와 줍니다. 양면을 있도록 도와주는 같습니다. 물론 반대를 위한 반대를 위해 사용하면 안되겠지요. 특히 좋은 일이나 어려움과 역경이 찾아왔을 하지만하면서 좋은 것을 생각하는 훈련을 하면 좋을 같습니다. 이런 마음의 여유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있으면 좋을 같습니다. 답답하고 힘들고 절망하고 포기하고 싶을 오히려 우리의 시선을 하늘 아버지께 고정하면서 하지만하면 좋을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전에 험한 고난의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우리가 구원의 기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많은 주님의 제자들이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하면서 고난, 핍박과 심지어 순교까지 당했습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이방인인 우리가 생명의 복음을 듣게 되었습니다. 지금 죽어도 천국에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어느 누구나 신앙의 여정 가운데 남모를 힘든 일이 닥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을 주님의 사랑에, 머리를 주님의 말씀에, 손을 주님의 섬김에 다시 순종하며 걸어가면 능력의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믿습니다. ‘하지만하면서 다시 가장 좋으신 하나님만 바라보며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12:2)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308(07/18/20) “근심”

peace

  세상에 근심 걱정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특히 요즘은 COVID-19이란 전염병의 대유행으로 근심이 하나 해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근심은 가지 양면성이 있음을 고린도후서 7:2-16절을 통해 발견할 있습니다. 가지 양면성은 근심하는 것이 무익할 수도 있고 유익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성경기자들도 가지 면이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시편기자는 근심은 몸과 영을 쇠하게 한다”(31:9) 반면 전도서 기자는 근심은 마음을 좋게 한다”(7:3) 말합니다. 고린도후서 7장에서 사도 바울은 성도의 근심을 무익한 세상 근심과 하나님 뜻대로 하는 유익한 근심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먼저 세상 근심이 있는 이것은 사망을 이룬다 합니다.(10) 성도들이 영적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이지만 육신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도들도 여전히 건강, , 명예, 증오, 탐욕 등으로 인한 세상적인 근심에 언제나 초연할 없습니다. 이러한 것들에 너무 매여서 근심의 구렁텅이에 빠지면 사망을 이룰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근심은 무익합니다. 지나친 욕심으로 인해 죄를 짓고 나서 근심에 빠진 사람은 원망하기 쉽고 죄를 감추려다 보면 초조해 하고 근심에 사로 잡히는 특징이 있습니다. 악해 있습니다. 성경에서 아담이 범죄하고 죄를 은폐할 , 사울이 잘못된 제사를 드릴 , 다윗이 밧세바를 취하고 남편을 죽였을 그러한 특징이 나옵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된 상태에서 죄를 짓고 가운데서 빠져 나오지 못하면 근심의 그늘에 갇히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 뜻대로 하는 근심은 다릅니다. 10 상반절에 근심이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룬다고 합니다. 영적인 근심이 있으며 이것은 유익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복음 전도를 위해, 그리고 헌신과 섬김을 위한 거룩하고 영적인 근심은 성도에게 후회할 것이 없게 만듭니다. 유익합니다. 주님을 위해 애쓰는 마음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하나님 뜻대로 하는 근심이 유익한 것은 회개하게 만듭니다. 자신의 불신앙, 나태함, 욕망 등을 하나님 앞에서 비춰보고 현재 상태를 깨닫습니다. 그리고 돌이킵니다. 이러한 마음은 이미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는 과정 가운데 있는 마음입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통회 자복할 오히려 구원의 기쁨을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실 믿습니다. 근심도 근심 나름입니다.

(고후7: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307(07/11/20) “상록수(evergreen)”

arborviate

저는 상록수를 좋아합니다.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 향나무 등을 말이죠. 그래서 매나사스(Manassas) 처음 이사 왔을 , 있는 그루의 측백나무(향나무와 비슷함) 보고 마음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이사 온지 7 동안 나무는 언제나 푸르름을 자랑해 왔습니다. 그런데 초부터 가운데 있는 나무가 갈색으로 변해 갔습니다. 일시적인 현상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주에 나무를 무심코 보니 조그만 솔방울같이 생긴 것이 움직이는 같았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무엇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바람의 방향과 상관없이 움직였습니다. 자세히 보니 벌레였습니다. 아주 작은 솔방울 같은 안에 숨어 있는 벌레가 나무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비슷한 것들이 나무 전체에 온통 퍼져 있음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벌레 천지였습니다. “내가 이것을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백웜(bagworm, 도롱이벌레)이라는 벌레였습니다. 벌레를 없애지 않으면 푸르름을 자랑하는 상록수도 죽을 있다는 설명을 읽었습니다. 그래서 당장 홈디포(Home Depot) 가서 해충약을 사다가 뿌렸습니다. 측백나무 그루에 모두 퍼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상록수에 좋은 영양제도 주문을 했습니다. 늦은 감이 있지만 나무를 살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의 무관심에 어느새 상록수가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무관심같이 무서운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영적, 정서적인 무관심이 나를 병들게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 아무리 훌륭한 인격을 가지고 있다고 소문이 사람이라 해도 순간에 무너질 있는 것이 인간의 연약함입니다. 가끔 뉴스에도 그런 인간의 모습이 전해 지기도 합니다. 누구든지 죄의 유혹에 넘어 가면 영혼이 먹게 됩니다. 아무리 신앙이 좋다고 소문난 사람도 모래성처럼 무너질 있는 것이 우리의 연약함입니다. 성경은 우는 사자처럼 우리의 약한 부분을 집중 공격하는 영적 존재로서 사탄이 있음을 말합니다. 그래서 영적인 안이함과 무관심이 어느새 일상이 되어버리고 익숙해 지면 일입니다. 걷잡을 없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나의 영혼을 주님의 강렬한 빛에 쪼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빛이고 진리되신 예수님의 말씀에 영혼을 날마다 소독해야 합니다. 그러면 내가 정결해지면서 회복될 있다고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시사철 푸른 신앙을 누릴 있습니다. 이처럼 변함없는 하나님의 사랑과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은 변함없는 믿음 생활을 있다고 믿습니다. 저는 이것을 상록수 신앙생활이라고 이름 붙이고 싶습니다


(야고보서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